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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고 무력 장수 TOP 8

디지털데이터 2020. 4. 1. 00:50

우리나라 최고 무력 장수 TOP 8

 

남자의 상징은 힘이다. 지금은 힘을 키우기 위해 헬스를 하기도 한다. 또한 운동을 배워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도 한다. 시합이라는 정정당당한 룰을 통해 우리는 자신들의 힘을 인정받으려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 속에 알려진, 또는 모르고 있는 힘을 대표하는 사나이들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8명의 장군에 대해 소개한다. 아는 이름도 있을 것이며 처음 들어보는 장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 속의 힘의 상징이었던 최고 무력 장수 TOP 8을 알아본다.

 


홍의장군 - 곽재우 - 뜻대로 싸우고, 뜻대로 살다 간, 우리 역사에 드문 쾌남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천강홍 의장군(하늘에서 내려온 붉은 옷의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신출귀몰한 전술로 유명하였다. 또한 붉은 옷의 장수 같은 신기한 이미지 덕분인지 임진왜란 의병 장중에서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신출귀몰한 곽재우는 뛰어난 전술과 전략을 바탕으로 강변의 깊고 얕음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이 주특기였다고 한다. 1592년 10월에 임진왜란 3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였었다. 그리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 때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등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며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김시민-꼴통 명장 - 조선 내 임진왜란 최고의 명장 중 한 명 고집불통의 쾌남아라고 볼 수 있다. 병조판서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격분한 김시민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던지고 그것을 발로 밟아 부수면서 "장부가 이것이 아니라면 어찌 남에게 모욕받을 수 있는가!"라며 소리치고는 바로 벼슬을 던지고 물러갔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 들었던 평가나 병조판서에게 이렇게까지 대들었던 일화를 보면 김시민은 흔히 말하는 마초 기질이 있다고 본다. 매우 강한 천상 무인이었고, 자존심도 매우 강했던 성격으로 보인다. 진주대첩 시 3800명의 병사로 3만 대군에 맞선 명장이며 죽은 후에도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알천- 호랑이를 압도하는 무력 - 최초의 등장은 636년(선덕여왕 5년)의 옥문 곡 전투이다. 서라벌을 노리고 백제 무왕이 침투시킨 백제군을 기습해 괴멸시켰다. 2년 후 638년 당나라와 화친하여 어느 정도 북방을 안정시킨 고구려의 영류왕이 북방의 요충지인 칠중성을 공격하자 직접 출전해 민심을 수습하고 그해 11월 칠중성 밖에서 고구려군을 격파했다. 기록은 매우 적지만 상당한 지휘력을 갖춘 명장이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화백회의 도중 난입한 호랑이를 맨손으로 집어던질 정도로 용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징옥- 한국 역사상 최강의 맨손 파이터 - 조선의 무관이자 이징옥의 난의 주도자였던 그이다. 맨손 무력만으로 놓고 보면 한국 역사상 최강으로 불려지는 인물로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야사에 그 초인적인 용력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형 이징석과 동생 이징규도 당대에 무인으로써 3형제가 모두 용명을 떨쳤다. 호랑이를 10대 시절에 맨손으로 잡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세종 시대부터 북방에서 근무하여 여진을 상대로 용맹을 떨쳐 여진족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여진족의 천적이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 무식한(?) 무장으로 보이지만 나름 임기응변에도 뛰어나고 청렴하며 성실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야설에서만 기록이 존재하고 조선 왕조실록에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유금필- 후삼국시대의 최강의 명장 -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호족이었던 그는, 후대의 강감찬, 척준경, 최영, 이성계와 함께 고려 초기, 중기, 후기를 대표하는 최강의 장군으로 왕건에게 굉장한 신임을 받았다. 유금필은 북벌의 추장 300여 명을 불러 성대한 술파티를 연 뒤 , 이들이 취하자 " 위협하여 단숨에 그들을 복종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북벌의 각 촌락들마다 사람을 보내서 너희 추장들이 다 복종했으니 이제 그만 니들도 숙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무려 1,500여 명이 항복했다. 포로로 잡힌 고려인 3,000여 명을 귀환시키는 데 성공해 태조가 큰 상을 내렸다고도 한다. 비교적 빈약한 편인 후삼국시대 자료로 이 정도의 엄청난 전과를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유금필만 있으면 전황이 어떻든 이긴다는 것이다. 여진족을 복속하고 그들에게 대추장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니 정치력 또한 일품이었다고 볼 수 있다.

 


두경승-청렴한 용장 - 고려의 용장 두경승은 이의민이 집권하던 시절(고려 무신정권 시기 1170~1270년) 이의민의 라이벌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타고난 장사에다가 무예인 수박에도 능통했지만 글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고 한다. 활 솜씨가 뛰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그의 임기응변이 전세를 뒤집어놓았다는 기록도 있는 등 군인으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더불어 성품이 온후하고 가식이 적었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인덕도 갖춘 용장이었다. 그러나 기록이 많이 없는 인물 중 하나이다. 

 


견훤- 문무를 갖춘 군주 - 견훤은 한때 고려를 멸망의 위기로 몰아세운 자이다. 1000년을 이어온 신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군주였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훌륭한 야전사령관이었고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뛰어난 전술적 면모도 갖추고 있었음은 틀림없다. 별다른 백도 없이 경주로 들어가서 순수한 실력만으로 비장 벼슬을 얻은 것만 봐도 그 실력만큼은 확실하다고 본다. 그것도 부정부패가 하늘을 찔렀던 신라 말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것이다. 특히 군사적 재능만 따지면 왕건보다 한 수 위로 볼 수 있다. 그 재능도 재능이지만 끈기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안시성주 (양만춘) - 방어의 맹장 - 그야말로 1차 고구려-당 전쟁 당시의 최고의 영웅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는 활약상을 보였다. 비록 안시성이 견고하고 식량도 상당량 비축되어 있었기에 방어하기에는 유리한 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안시성 공략에 나선 이들은 수없이 많은 중국의 군벌들을 무찌르고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당태종, 당대에 당나라 최고의 명장 가운데 하나였던 이적, 그리고 황제의 오른팔 장손무기 등의 쟁쟁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괴물 같은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지켜낸 것은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다못해 당태종이 이 싸움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바람에 다 이겨가던 전쟁에서 패하여 돌아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엄청난 명장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영화 '안시성' 보면 조인성이 그 역할을 맡아 열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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